한국의 영국 선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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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포터즈 작성일 23-11-23 08:25 조회 641회 댓글 0건본문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에 활동한 영국 선교사들을 돌아보는자 한다.
한반도에서 영국 선교사와의 인연은 비극으로 시작됐다.
영국 웨일스 출신의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는 1866년 조선 선교의 꿈을 품고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대동강에서 조선군에게 붙잡혀 27세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친은 “내 아들을 죽인 조선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또 다른 선교사 존 로스는 “토머스 선교사의 뜻을 내가 이루겠다”며 자원하고 나섰다.
여러 영국 선교사가 한국 사랑을 실천했다.
1910년 식민지 조선 땅을 밟은 여성 선교사 엘런 홉스는 과음과 흡연의 폐해로부터 조선인을 구하겠다며 거리 금주 캠페인을 펼쳤다.
학교에선 영어도 가르쳤다.
과로로 약해진 몸에 이질이 닥치자 이겨내지 못했고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혔다.
해방 후에도 도움은 계속됐다.
1966년 의료 선교사로 파견된 피터 패티슨 박사는 마산에 터잡고 척추결핵을 앓는 어린이 1만2000여 명을 무료로 치료했다.
기술 강습소를 열어 완쾌한 청소년의 자립도 도왔다.
한반도에서 영국 선교사와의 인연은 비극으로 시작됐다.
영국 웨일스 출신의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는 1866년 조선 선교의 꿈을 품고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대동강에서 조선군에게 붙잡혀 27세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친은 “내 아들을 죽인 조선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또 다른 선교사 존 로스는 “토머스 선교사의 뜻을 내가 이루겠다”며 자원하고 나섰다.
여러 영국 선교사가 한국 사랑을 실천했다.
1910년 식민지 조선 땅을 밟은 여성 선교사 엘런 홉스는 과음과 흡연의 폐해로부터 조선인을 구하겠다며 거리 금주 캠페인을 펼쳤다.
학교에선 영어도 가르쳤다.
과로로 약해진 몸에 이질이 닥치자 이겨내지 못했고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혔다.
해방 후에도 도움은 계속됐다.
1966년 의료 선교사로 파견된 피터 패티슨 박사는 마산에 터잡고 척추결핵을 앓는 어린이 1만2000여 명을 무료로 치료했다.
기술 강습소를 열어 완쾌한 청소년의 자립도 도왔다.